서울 도심을 돌고 도는 버스엔 승객들이 내려놓고 간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 수백 대의 버스가 드나드는 종점이자 출발점인 곳

이번 정거장은 양천차고지입니다.”

 

수백 대의 버스가 드나드는 쉼터

 

운행을 마친 수백 대의 버스가 잠든 곳. 여러 운수업체가 함께 쓰는 종착점인 동시에 출발점인 버스공영차고지다. 서울시 11개의 공영차고지 중 한 곳인 양천 버스공영차고지. 이곳에는 12개 운수업체의 36개 노선을 도는 버스 375대와 기사 750명이 드나든다.

 

오가는 버스와 사람 수만큼 이곳엔 다양한 사연이 모여든다. 한때 사장님이었지만 IMF에 쓰러져 기사가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이발 가위 대신 운전대를 쥔 이도 있다. 어떨 때는 버스에 실려 승객이나 분실물이 흘러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든 열려있는 종점이자 기점인 곳, 양천 버스공영차고지에서 함께 보낸 3일이다.

 

전환점에서 오라이’! 인생 누비는 행복버스

버스 차고지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이가 있다. ‘함경도 또순이라 불리는 유혜선 씨(46). 2002년 이북에서 넘어온 그녀는 건설현장 일용직, 식당 종업원, 노점상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지금은 운전대를 잡은 지 10년 차인 베테랑이지만, 이 자리에 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형면허 필기시험에서 낙방한 것만 12. 운수업체에 들어가기는 더 어려웠다. 경력 없는 그녀를 뽑으려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입 기사 때는 노선을 이탈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승객들이 길을 인도해줘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버스를 운행한 지 10년이 되었더니 모범운전자 자격증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양천차고지에서 만난 동료 기사와 결혼한 것이다. 오늘도 신바람 나게 도로를 누비는 유혜선 씨. 이제는 인생 올라잇이다.

 

차고지는 제 삶의 터전이고, 텃밭이에요

처음엔 운전하고 싶어서 구석에 숨어 들여다볼 때가 많았어요

지금도 항상 차 닦으면서 무사히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닦아요

- 유혜선(46) -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하는 새벽 버스

새벽 330, 모두가 잠든 시각 곽성구 씨(60)의 걸음이 분주하다. 그가 운행할 버스는 8541번 생계형 맞춤버스. 금천구에서 강남구까지 가는 출근버스로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강남으로 청소나 경비를 하러 가는 이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노선이다 보니 곽성구 씨는 어느 역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줄줄 꿴다. 매일 보던 얼굴이 정거장에 안 나오면 걱정하기도 한다. 작은 버스에서 인연이 된 기사와 승객은 어느덧 고단한 출근길의 동지가 됐다.

 

이번 달 말일이면 정년이라는 곽성구 씨. 앞으로도 계속 8541번을 몰고 싶다는 그의 버스 인생은 여전히 운행 중이다.

 

매일 보는 분들이니까 가족 같아요

이 분들은 새벽에 나오니까 지치고 피곤하죠

승객들이 타면 안녕한지 인사해요

 

오늘은 좋습니다라고 하기도 하고요

버스 타는 그 순간만이라고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 곽성구(60) -

 

by 은용네 TV 2015. 4. 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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