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 고단한 육아, 풀 한 점 없는 풍경
잿빛 도시 숲을 떠나 도착한 푸른 섬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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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의 인생, 제주도로 '혼저 옵서예'
바다와 산, 흙과 풀 냄새가 가득한 푸른 섬. 관광지로 익숙했던 제주도에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매월 1,000여명의 인구가 제주에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직접일군 텃밭에서 기른 건강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고 푸른 바다와, 한라산이 자리 잡아 지상낙원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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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주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익숙하지 않은 농약을 뿌리다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하고, 마당에선 매일같이 잡초와의 전쟁이 펼쳐진다. 육지와는 다른 제주문화와 외국어 같은 제주어에 맘을 열지 못하는 귀촌인도 상당수다. 제주 농업기술원과 서귀포시에서는 제주 문화와 간단한 제주어 교육, 바리스타, 집짓기 교육 등 다양한 활동 지원을 통해 귀농·귀촌인 들의 새로운 삶을 돕고 있다. 편리하던 육지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행을 선택한 사람들. 제주 귀농·귀촌인 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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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가 어때서~ 도전하기 딱 좋은 나인데
서귀포시 남원읍의 푸른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면 투박하게 지어진 나무집을 발견할 수 있다. 귀촌인 박영혜씨(67)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어설픈 솜씨로 손수 지은 가게는 투박하고 촌스러운 모양이지만 넉넉한 인심, 맛있는 음식으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직접 장을 보고 요리 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영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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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씩씩한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100세가 넘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5년 전 제주에 왔다. 영혜씨는 모두가 반대하던 낯선 제주행을 결정한 것이 67년 인생 중 가장 잘한 선택라고 말한다. 새롭게 도전하는 매일 아침이 설레기 때문이다. 매주 금, 토요일마다 운영하는 벼룩시장, ‘폴개장터’는 최근 영혜씨가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다. 귀농·귀촌인과 지역민이 자신이 만들거나 수확한 것을 판매할 수 있는 장터. 아직 손님이 많지 않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지역민과 귀촌인이 어우러지는 자리가 된다. 70세가 가까이 된 나이에 새롭게 하는 도전. 박영혜씨의 얼굴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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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다른 일이라면 뭐든 용기가 나는 거죠. 하면 될 거 같은 것들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하면 될 거 같은 거 그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 해주고 싶어요.
저는 67세에요. 일흔에 가깝지만 이런 거 시작하잖아요.”
-박영혜_67세-
■ 제주가 선물한 최고의 선물
정년퇴직 후 귀촌한 인구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30, 40대의 젊은 귀촌인구가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의 육아를 위해 귀촌한 가족도 상당수다. 용인에서 중국어 학원을 운영하던 황선주씨(41)와 손보라씨(41) 부부도 아들 지후와 시후를 위해 1년 전 제주에 왔다. 10년 넘게 해왔던 일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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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 땐 층간소음 때문에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녔던 지후가 지금은 마당에서 신발던지기를 하며 뛰논다. 둘째 시후는 4살밖에 안된 어린 손으로 양손 가득 상추를 가져가 토끼에게 밥을 준다. 바닥에 반은 흘리고 방법도 어설프지만 책에서만 보던 동물을 제 손으로 키운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황선주씨네는 부부사이 갈등도 사라졌다. 육아와 가사를 함께하고 대화가 많아지자 맞벌이로 고통 받던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이다. 경제적인 불안감이 남아있지만 지금의 행복함을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다는 황선주씨 부부. 가족에게 제주의 생활은 최고의 선물이다.
■ 제주에서 살멍, 사랑하멍
제주에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짝을 만난 이도 있다. 마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 노창래씨(53)와 고말선씨(52)부부다. 이들은 3년 전 농업기술원에서 교육을 받다 만나게 되었다.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귀농한 노창래씨와 남편과 사별하고 암 투병중인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고말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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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아픔을 알아서인지 부부는 농사일부터 동호회 활동까지 모든 일을 함께한다. 귤 농사와 각종 특용작물들을 돌보기도 손이 모자라지만 최근엔 벌통을 분양하여 양봉도 시작했다. 초보 농사꾼에게 농사꾼의 삶은 도시에서보다 정신없이 돌아간다. 처음 시작한 농사에 약 이름이 생소하여 농사에 실패한 적도 있고 제초제를 쓰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풀을 매다보니 잡초제거에만 일주일이 걸리기는 고단한 생활이다. 하지만 노창래씨는 지금의 생활에 행복함을 느낀다. 새로운 터전에서 사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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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이던 도심을 떠나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이들.
제주도 귀농·귀촌인 들의 3일을 담았다.
<2015.7.19. 밤 10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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