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이 좋다 - 화순 밥상
맛에도 색(色)이 있다.
눈으로 먼저 맛보는 화려한 빛깔들
그중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바로 검은색!
투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정겨운 맛,
오늘은 밥상에 숨어있는 검은색을 찾아 화순으로 떠나보자
■ 검은땅을 품은 화순, 어둠속에서 희망을 캐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6550A4755DECC1A09)
한때, 검은 흙은 화순사람들에겐 금덩이가 되어주기도 했다.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만큼 번성했던 화순의 탄광촌마을.
연탄이 사라져 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풍경과는 다르게,
캄캄한 막장을 37년이나 지켜온 베테랑광부 최병철 씨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남들은 얼마나 힘드냐고 이제는 쉴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만류하지만
새벽잠을 설치며 아내 조효순 씨가 싸준 도시락 하나면 금방 거뜬해진다곤 한다.
연탄 화덕으로 구워낸 돼지고기로 광부들은 목에 쌓인 탄가루를 가셔냈고,
여기에다 수육과 홍어무침, 묵은지를 한 데 싸서 먹는 삼합은 그 맛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탄광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고된 삶을 견디게 해준 음식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752D74F55DECC3111)
■ 드넓은 산간지역 화순 - 흑염소가 뛰노니 몸도 마음도 넉넉해진다
전라남도 화순은 유일하게 흑염소도축장이 있을 만큼, 일명 흑염소의 고장!
23년째 흑염소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김장현 씨.
어느덧 천 두가 넘는 흑염소를 키우고 있는데, 염소가 많아지고 난 후로는
스물여덟의 젊은 아들 김태산 씨가 아버지를 돕고 있다.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의 손맛은 딸 대신 아들이 이어받아 화려한 솜씨를 펼치는데..
그래도 아직까진 흑염소 하면 푹 끓여서 쭉 찢어먹는 게 제맛이라는 아내 최수자 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이 만든 흑염소 스테이크를 맛보자 이내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흑염소,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에 흑염소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본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62814C55DECC3E47)
■ 시간이 멈춘 그곳, 화순에는 검은 것들이 산다
여름이면 깨를 널어 말리고 터느라 분주하고,
마을 어귀 개천에선 다슬기 잡는 할머니들과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불려둔 검은콩은 맷돌로 갈아 흑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는 묵은지와 양념장을 풀어 비지밥을 만든다. 이양 솥에 비지밥을 만들었으니 깻묵장도 동치미물에 풀어 함께 쪄낸다.
예전에는 솥에 밥을 쪄낼 때면 고추며 가지이며 모두 함께 찌곤 했다는 오효순 할머니.
오래된 낡은 집과 손에 익은 옛 물건들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도장마을 사람들.
시간이 머물다 가려는 듯, 밥상의 시간도 천천히 흘러간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51C684A55DECC4D24)
■ 흑백사진처럼 그립고 정겨운 것들 - 추억도 음식도 천천히 흐른다
돌담길을 따라 옛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한 영신마을.
어릴 적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이장을 맡고 있는 주금숙 씨.
마을 어르신들 따라다니며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다는데..
아플 때면 엄마가 끓여주시던 깨죽이 맛있어 어릴 땐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었다는 흑임자죽과
흑미약밥, 그리고 고소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검은깨강정과 검은콩강정까지.
귀한 손님 올 때면 대접하는 다과상이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인데,
돕기보단 자꾸만 장난치기 바쁜 주금숙 씨를 귀엽게 봐주는 이웃 언니 양춘기 씨.
뙤약볕을 가려주는 나무그늘처럼 고향은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품어준다.
흑백사진 속 청춘은 어느덧 사라져 가지만,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추억이 되고 우리들의 음식이 된다.
<2015.08.27일 밤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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