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여중생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서울 봉천동의 한 모텔.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학
교를 다니고 있었던 이 여중생은 놀랍게도 성매매를 하던 중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
졌다.
경찰에 따르면 부모와의 불화로 가출한 뒤 생활비 마련을 위해 성매매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집을 나온 6개월의 시간 동안 이 아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작진은 길거리로 직접 나가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절도,
사기, 성매매 등에 빠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는 범죄로부터 벗어나 보살핌을 받을 ‘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PD수첩]은 이들을 ‘홈리스(homeless) 청소년’ 즉,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이라
다시 이름 붙이면서, 이 아이들을 위한 ‘집’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 집을 탈출한 아이들
“아이는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장 기관에 탈이 나서 손등에 트러블
이 일어납니다. 그럼 손등에 약 발라야 소용없죠. 내장기관을 고쳐야합니다. 우리 아
이들의 가출은 손등에 일어난 염증입니다. 부모님의 생각과 언행이 바로 내장기관이
죠. 그런데 우리는 겉에만 약 바르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의 부모님들을 다시 말해
서 우리 어른, 자신들을 직접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ㅡ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INT 中
길에서 만난 17살 B군, 그는 하루 한 끼뿐인 식사를 컵라면 하나로 해결했다. 잘 곳
은 24시간 카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제작진에게 B군은 ‘돌아갈 집이 없다’
고 말했다.
11살 때 아빠가 재혼한 후 새엄마가 데려온 형으로부터 6년 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B군.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지만 새엄마는 물론, 유일한 버팀목이라 여긴
친아빠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등을 돌렸다.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집 밖으로 나온 B군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제대로 된 알바를 하려면 ‘부모 동의서’가 필요한데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쉼터에서 만난 17살 A양도 생활비가 없어 걱정하던 중, 함께 다니는 언니에게 끌려
가 원치 않은 성매매를 했던 과거가 있다. 3일 만에 그곳에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
지만 현재 A양은 다시 집 밖으로 나와 쉼터에 머물고 있다.
이혼하고 혼자 자신을 키우던 엄마의 무관심때문에 시작한 가출.
귀가와 가출을 반복하다 결국 다시 집 밖으로 나온 것도 자신의 상처를 감싸주지 않는
엄마의 탓이라고 A양은 말했다.
[PD수첩]이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성매매, 절도, 사기 등 다양한 범죄 경험이
있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 ‘잘 곳’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입 모아 말했다.
가출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면 해결된다지만 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부모의
학대, 방임으로 도리어 집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PD수첩]이
쫓아가 보았다.
■ 홈리스 청소년을 위한 사회 안전망과 현실
“가출 청소년들을 보호 조치하고 들어가서 지낼 수 있는 곳은 청소년 쉼터가 유
일합니다. 근본적으로 가정 해체과 같은 가족 문제로 인해서 바깥으로 나온,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기 때문
에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김용관 남양주시 청소년일시쉼터 소장 INT 中
가출 청소년들을 유일한 시설인 청소년 쉼터. 일시·단기·중장기 3가지 유형으로 나뉘
어 가출 청소년들의 위기 상황을 지원하고 가정 복귀 혹은 사회적응을 돕는 곳이다.
전국에 설치된 쉼터 수는 119개소로 가출 청소년 규모 추산치 약 39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작년 12월 말, 경기도에 위치한 한 청소년 일시쉼터는 갑작스러운 사업종료
통보를 받았다가 철회되는 일을 겪었다. 예산을 지원하는 광역·기초 지자체 간에 지
원 규모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재원 부족을 이유로 기초 지자체가 지원을 포기하겠다
고 나섰던 것이다.
다행히 사업종료 통보는 철회되었지만 청소년 쉼터 운영의 중요성을 지자체의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일각에선 우려스러운 시각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까지 버팀목이 돼 줘야 할 집이 없어 사회의 최 약자로 자리한 가출 청소년들
을 위해 우리 사회가 가꿔야 할 최소한의 안전망은 무엇인지 [PD수첩]이 알아보았
다.
■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가정의 모습은?
부모가 없이 방치되는 아이들. 누군가 나서서 보호를 해줘야 하거든요. 그러면
그 누군가가 누굽니까. 부모가 아니면 국가가 해야 하는데 (···) 아이들에게 가장 필
요한 건 따뜻한 가정입니다. 가정이 회복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복이 어려우면 방
치할 것인가? 가정과 유사한 공동체 대안 가정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ㅡ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판사 INT 中
부산에 자리한 한 가정. 12명의 남자아이들이 ‘아빠’ ‘엄마’라 부르며 생활하는 이곳
은 ‘청소년 회복센터’, 다른 말로 ‘사법형 그룹홈’이라 불리는 대안 가정이다.
1~10호까지 마련된 소년범 보호처분 중에서 1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만 올 수 있다
는 이곳의 기준에는 이유가 있다. 1호 처분은 가정(보호자)의 보살핌 속에서 재범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도를 받는 처분. 사법형 그룹홈은 돌아갈 집이 없는 1호 처분 청
소년을 위한 집이다.
가출에서 범죄로, 소년법정에서 이곳 사법형 그룹홈으로 오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은 자신들의 아픔을 나누고 보살펴주는 엄마, 아빠의 품이었다고 아이들은 말한
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부모와 형성된 공감대 덕택에 아이들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해와 공감으로 다져진 부모-자식 간의 관계야 말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날 자양분이 아닐는지······. [PD수첩]이 약 39만 명의 가출 청소년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의 모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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