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노동 시간 10시간 30분. 한국인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의 통계
에 잡히기 시작한 2000년부터 8년간 부동의 1위를, 2008년 이후부터는 줄곧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근무시간 중,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점심시간.
대한민국 모든 근로자들에게 점심시간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자 잠시나마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두 다리도 쭉 뻗을 수 없는좁은 공간에서,
식사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채워 넣는 식의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제대로 된 휴식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근로자들의 점심식사 실태에 대해 이 취재했다.
■ 점심을 ‘마시는’ 사람들
근로기준법 54조에는 근무시간에 따른 휴게시간이 명시되어 있고, ‘그 시간만큼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휴게시간
은 자유롭게 보장되고 있을까?
“저희는 (밥을) 마시죠. 여유롭게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부럽죠.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부럽지만, 저희는 진짜 너무 바쁘기 때문에 화장실
도 한 번 못가거든요.“
- 간호사 인터뷰 중
대학 종합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밥을 마신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언제 자신
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환자들을 위해 점심을 먹으면서도 호출을 받고 달려
나간다. 2011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인구 1,000명 당 간호사는 평균 8.8명.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절반 수준인 4.7명에 불과했다. 바빠서 점심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부족한 간호 인력은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취재 도중 제작진은 간병인이 간호사 대신 ‘석션’이라는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서비스직의 대표직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A씨. 오전 내내 고객
들 앞에서 항상 친절한 미소를 짓는 그녀는 직원용 출입구를 통해 계단으로 향한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A씨와 같이 직원 식당으로 한 번에 몰리는 사람들을 피해 직원용 계단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직원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휴식을 위해, 때로는 점심식사를 위해 오늘도 계단으로 향한다.
■ 우리, 어디서 쉬어야 하죠?
고용노동부령,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보면 사업주가 휴게공간을 마련하
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법령에는 휴게공간만 마련하도록 되어 있어 구체적인 휴게
실 설치에 대한 내용이 미비하다.
그래서 사업장내 휴게공간이 있다 해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가 휴게실인데. 냄새가 심하죠? 하수도 냄새 나고요.
넓이가 1M 밖에 안 되더라고요. 여기는 하수도 물 내려가는 데예요.
- A사 사원 인터뷰 중
휴게실이 있어도 회사 밖 복도에서 점심을 먹었던 A사 사원들. 너비 1M 정도에 하수
구 냄새가 나는 곳을 휴게실로 인정하라고 지시한 사업주. 이에 A사 노조는 잘못된
휴게실 운영으로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
그러나 이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권고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몇 해전, 식사를 할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식사 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사연이 알려
져 파문이 인 적이 있었다. 이후 많은 대학에 청소노동자들의 노조가 생겼고, 그로인
해 환경은 좀 개선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제작진이 찾아간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여전히 열악했다. 아직도 사람
들의 눈을 피해 구석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모 대학 화장실내 청소도구 보관 칸에서 쉬고 있는 청소노동자를 만났다. 화장실에서 쉬던 청소노동자는 일을 10년 하다 보니 화장실 냄새 따위는 무뎌졌다고 한다.
한 대형병원의 청소노동자는 두 다리를 뻗기도 힘든 3.3m² 남짓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허락하에 그들의 휴게 공간에 들어간 제작진. 창문도
없고, 환기시설도 안 되는 그곳은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들은 근무복을 입으면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쉴수 가 없다고 했다.
용역업체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넓은 공간 중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3.3m² 남짓 한 공간뿐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PD수첩]이 그들의 점심시간과 휴게공간에 대해 취재했다.
<5. 12일 밤 23:15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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