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애인 간의 폭력으로 검거 된 사람은 약 2만
명. 그 중 살인 및 살인미수 건수는 313건으로, 한 해 100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되거
나 죽기 전 상황까지 내몰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력, 피해자들은 보
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 연인에 의한 잔혹한 죽음들
미국 명문대를 3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선망의 직장에 취직했던 김선정(26) 씨. 지난
5월 그녀는 야산에 암매장 된 채 발견되었다. 선정 씨를 살해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
의 남자친구 이씨. 선정 씨의 친구 윤지(가명) 씨는 선정 씨가 이씨와 만나는 동안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었다고 한다.
윤지 씨가 제작진에게 건넨 사진 속 선정 씨의모습은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얼굴과 몸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다. 윤지 씨는 선정 씨가 생전에
이씨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찍어놓은 사진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선정 씨가 죽고 난 이후에야 그녀가 폭행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죽은 것도 그렇지만 자꾸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애한테 얻어터졌다 막 당했다
그 생각을 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 얼마나 무서웠고 아팠겠어. 친구들한테 무서워
죽겠다고 말했다는데 왜 아빠한테는 얘기를 안 했어. 그때 얘기했으면...
- 故 김선정 씨 아버지
선정 씨가 살해되기 10일 전, 경남 마산에서도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정 씨가 그랬던 것처럼 협박과 잦은 구타에 시달렸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부모 또한 그녀를 떠나보낸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경찰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폭행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피해자
들. 그들은 왜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홀로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것일까.
■ 침묵의 폭행, 스토킹
대다수의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물리적 폭력과 함께 스토킹을 경험한다. 스토킹
은 전혀 모르는 관계에서도 발생하지만 여성의 전화 ‘2014년 상담통계 및 분석’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의 70.7%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했다.
지속적으로 데이트 폭력을 당해왔던 김영주(가명) 씨도 가해자로부터
물리적 폭행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통한 끊임없는 구애, 미행,
가족에 대한 협박 등의 스토킹을 경험했다.
절대 못 잊겠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하루에 거짓말 안 보태고 문자가 80개 온 적
이 있어요. 보자고, 내려오라고, 집에 있는 거 다 안다며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더라
고요.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고 보름 정도가 되다보니까 사람이 노이로제가 걸려서
죽겠더라고요.
- 피해자 김영주(가명) 씨
영주 씨는 가해자가 집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찜질방으로 도피한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경범죄 처벌법에 의한 범칙금 8만원 뿐. 이는 노상방뇨나 장난전화의 범칙금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캘리포니아주가 1990년부터 최초로 스토킹 관련법을
만들기 시작해 95년에는 스토킹방지관련 연방법이 제정되었으며
일본 또한 2000년 5월부터 스토커행위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독일은 형법 안에 스토킹관련 조항이 신설되어 2007년 3월부터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도 1999년부터 총 8건의 스토킹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연인 간의 폭행 특히 스토킹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법의 도움을 받기조차 어려운 피해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 안타까운 죽음, 막을 수는 없었나?
우리 애하고 경찰서에 고소를 하러 갔어요 가니까 이런 내용 갖고는 형을 받아
도 가해자가 미비한 형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형 받은 것 때문에 더 과격해질
수도 있으니 한번 타일러 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이틀 뒤에 사건이 났어
요
- 피해자 아버지
대구에 사는 서진(가명) 씨는 작년 12월에 교제하던 남자친구에게 살해를 당했다.
서진 씨가 살해되기 전 그녀 자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까지 6번이나 경찰에 도움
을 요청했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진 씨가 살해된 후
가족들은 가해자가 폭력 전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진 씨 본인과 가족 그리
고 경찰이 사전에 그 사실을 알고 조금 더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면 서진 씨는 현재
가족들 곁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데이트 폭력, 선진국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영국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데이트 상대방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법, 일명 ‘클레어법’이 시행되고 있다. 2012
년 그레이트 맨체스터 주를 포함한 4개 지역에서 시범 시행된 클레어법은 효과가 있
다고 판단되면서 지난해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94년 제정된 미국의 ‘여성폭력방지법’은 데이트 폭력을 가정폭력 안에 포함시켜 놓았다. 호주 퀸즈랜드 주 역시 2012년에 ‘가정 및 가족폭력보호법’이 개정, 연인 등의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도 가정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창원대학교 법학과 류병관 교수는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데이트 폭력을 가정폭력의 범주에 포함시켜 법적 보호장치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PD 수첩] 1042회에서는 데이트 폭력의 실태와 현실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6. 16일 밤 11:15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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