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한국의 한 건설사가 뛰어든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중동 붐은 오일 쇼크 등 세계 경제침체로 목이 조여오던 한국 경제에 숨통을 틔웠다.

 

그렇게 모래바람을 견디며 중동을 누빈 아버지들의 땀과 눈물 덕분에

우리는 그때 당시 혹독한 가난의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2015, 한 세대가 지나면서 잊힌 그 땅에는 지금도 수많은 타국의 아버지들이

뜨거운 사막 한복판에서 모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는데,

가족을 위해 가장 뜨겁게 한 시대를 살아낸, 그리고 살아가는 중동 근로자들.

 

그들의 삶 속에 담긴 땀과 눈물을 음식으로 발견한다.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당신만을 그립니다.”

 

열사의 땅에서 청춘을 보냈던 아버지들의 그 뜨거운 시간들.

머나먼 타국, 낯선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들의 술잔에는 흘리지 못한 눈물이 절반이라는데,

누렇게 빛이 바랜 낡은 편지로부터

이들의 못다 한 얘기를 풀어보자

 

2015년 카타르 건설현장에서 만난 그 시절 아버지들

4~5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어오는 모래바람..

그 뜨거운 열사의 땅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카타르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만난 손형호 씨를 비롯해 오랫동안 중동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일꾼들이 오늘도 뜨거운 현장을 누빈다.

 

숙소도, 먹는 것도 모든 게 편해진 요즘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은 여전하다.

늦은 밤, 김치찌개 한 그릇에 쓸쓸함을 달래며,

아내와 딸이 보내온 반찬과 편지에 눈물이 고인다.

40년 전 그때처럼 가족을 위해 그리움 참아가며 사는 중동 아버지들의 시간은

아직 현재형이다.

 

 

3년이 30년 될 줄 누가 알았누

3년이면 될 줄 알았다. 결혼 21일 만에 중동행 비행기를 탔던 게 어느새 35.

건설현장에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고 있는 이원식 씨.

 

5년 만에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 혼자 생활하며 터득한 그만의 음식이 있다.

배추를 대신한 양배추김치와 돼지고기 대신 먹던 양고기 불고기!

한 번도 힘들다 내색 해 본 적 없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 혼자 속으로 삭이려고 애쓰지.

그렇지만 그러는 제 속은 정말 뭉그러져 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등에선 그렇게 흘리지 못한 눈물 같은 땀 냄새가 난다.

 

사막에 꽃 피운 코리아 드림 - 그 뒤에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 중동의 허브로 불리는 두바이.

이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돼지고기에 무와 배추까지 구하지 못할 식재료는 없다.

25년째, 두바이에서 한국음식만 고집하며 살아온 김석조 씨와 박경자 씨 부부.

 

들깨와 고춧가루로 맛을 낸 샐러드를 만들고, 23년 된 큼직한 솥에

한약재를 고아 족발을 삶는다.

그 시절 비행기 타고 떠난 사람들, 다 불쌍한 사람이야.”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은 사람, 그리고 음식이었다.

 

건설자재 생사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세민 씨에겐

힘들 때마다 웃게 해주는 15년 지기,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는 김세민 씨에겐 아랍 전통음식인 갑사를 만들어주며

함께 밥상에 마주 앉은 친구가 고맙고 다행이다.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화려한 도시가 세워지기까지,

그렇게 뜨거운 땀과 눈물. 그 길고 외로운 시간을 버텨낸 아버지들이 있었다.

 

몰래 만들어 먹던 술싸대기의 추억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싸대기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

술이 금지된 중동에서 힘들게 일하는 한국인근로자들에게 가장 큰 고역은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

 

3~40년 전 한국인 근로자들이 몰래 만들어 먹던 술이 바로 싸대기다.

그리움에 한 잔, 고단함에 한 잔..눈물 같은 술 싸대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이말재 씨도

80년대 초 돈을 벌어오겠다며 모질게 가족을 떠났다.

 

그 시절, 유일하게 가족과 연결해준 것은 편지였다.

빛바랜 낡은 편지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아버지의 외로움과 그리움은

딸에게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양갈비탕에 김치찜까지, 중동생활 30년에 아내는 양고기로 못하는 요리가 없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만 흐른다는데..

그렇게 편지 속에 담긴 가족의 고단했던 지난 시간들이 밥상을 채운다.

 

낯선 타국 어디선가 그리움에 목이 메여 편지를 쓰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뒤늦은 답장을 보낸다.

한세상, 아버지로 살아주어 고맙습니다.”

 

430() 오후 730

 

by 은용네 TV 2015. 4. 30.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