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정조 시대를 담다

김홍도의 풍속화 대표작으로는 점심, 새참, 행상, 장터길, 빨래터, 길쌈, 고기잡이,

주막, 고누놀이, 활쏘기, 점쾌 등 우리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화폭에 담은

대표적인 화가이다.

김홍도가 천재로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한국화의 전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화가들이 중국풍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속화 즉 서민들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고 화가의 지위를 올려 놓았음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김홍도 그림의 특징은 거칠고 간결한 선 으로 표현 하였고, 색깔이 없으며 앞을 진하게

뒤를 흐리게 그리는 원근법을 사용하였고 배경이 없으며 인물중심으로 대부분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표현하였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가 있는 자로 그 이름을 안 지 오래다.

삼십년 전쯤 그가 나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에게 주관케 하였다.”

<홍재전서>

 

조선 최고의 화가,

백성들의 삶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낸 풍속화로 잘 알려진

단원 김홍도.

 

그는 평생 정조의 총애를 받은

국왕 직속 화원이었으나

 

정작 실록에는

, 세 줄의 기록만이 남아있다.

 

단원 김홍도, 정말 조선 최고의 화가였을까?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왕의 초상 즉 어진을 정조가 세자 시절에 한번, 왕이 된 후 2번이라 그렸던김홍도. 그러나 그는 용안을 그리는 영예로운 어용화사는 아니었다.

 

다만 정조의 이것만을 그릴 수 있었다는데... 도화서 화원 중 상위 10명을 선발, 화원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은 자비대령화원의 명단에서도 김홍도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정말로 조선 최고의 화가였을까? 김홍도를 둘러싼 숨겨진 진실들이 공개된다.

 

붓을 든 국왕 직속 기자!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김홍도의 풍속화. 이 그림들에 담긴 비밀이 있다? 단순한 그림을 넘어 또 다른 쓰임이 있었다는데... 그의 풍속화는 사실 정조의 명에 의해 그린, 왕에게 바치는 민생 보고서였던 것!

 

김홍도는 이른바 왕의 직속 기자로서 정조를 대신해 백성의 삶과 조선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만물각>에서는 고연희 미술사학자를 통해 정조의 민생 보고서, 김홍도의 풍속화 속에 담긴 18세기 사회상을 들여다본다.

 

정조시대 가장 화려한 8일의 기록, 김홍도의 원행을묘정리의궤

1795, 조선 22대 왕 정조의 행행(幸行), ‘행복한 행차가 시작된다. 왕의 즉위 20년이자, 어머니 혜경궁과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한 해였다. 6천여 명의 사람들과 14백여 필의 말이 동원된 화려한 행렬...

 

이 역사적 날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의궤가 있었으니 바로 조선의 의궤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원행을묘정리의궤’. 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의궤의 도설 삽화 지휘를 맡은 인물은 역시, 단원 김홍도였다. 정조의 인생에서, 더 나아가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한 8. 그 날의 기록에도 역시 김홍도가 있었던 것이다.

 

정조의 죽음, 사라진 천재 화가

순조 4. 자비대령화원 시험 명단에 김홍도의 이름이 등장한다. 60세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정조가 면제해주었던 시험을 봐야만했던 것. 당대를 풍미한 김홍도였지만 정조 사후,

 

어린 화원들과 함께 시험을 봐야 했을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비대령화원 시험을 본 이듬해, 그는 자신의 심정을 담은 그림 <추성부도>를 그려내는데... 이후 자취를 감춰버린 조선 최고의 천재 화가 김홍도.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정조의 눈이 되어 화폭에 담은 민생보고서’. 412일 일요일 밤 1030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붓 한 자루로 정조의 시대를 그려낸 김홍도의 못다 한 이야기가 공개된다.

 

by 은용네 TV 2015. 4. 12.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