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님은 무조건 왕인가요?
2012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프랜차이즈 가맹점 직원의 임산부 폭행 사
건. 한 온라인 카페에 종업원이 임산부인 자신의 배를 찼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해당 프랜차이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임
산부의 글이 일부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사태는 급반전되었지만 이미 해당 지점은 문
을 닫은 후였다.
당시 억울하게 문을 닫은 가맹점의 점주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PD수첩]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어렵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당시 사건의 의미
심장한 뒷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허위 사실 유포, 협박, 욕설, 폭력행사 등 상식선을 넘어선 문제행동들로 사업자에
게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악성 소비자’들. [PD수첩]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
는 악성 소비자들의 실태를 낱낱이 살펴보았다.
■ ‘소비자’ 탈을 쓴 사기꾼의 등장
“가게의 신뢰도나 이미지 때문에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하는 업주들의
심리를 이용해 범행을 하다 보니 업주들 또한 그런 심리로 어쩔 수 없이 피의자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송금해 주지 않았나···”
- 대구 서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유상현 경사 INT
지난 7월, 유명 맛집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40대 남성 A씨가 검거되었다.
음식에서 나온 이물질로 치아가 손상되었으니 병원비를 내놓으란 전화통화로 약
4,760만 원의 돈을 갈취한 혐의였다. 피해 음식점 수만 해도 전국 167곳에 달했다.
사실 확인 없이 고작 전화 한 통에 점주들이 돈을 내어준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자
칫 고객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소문이 퍼져 가게 문을 닫게 될까, 두려웠던 탓이다.
소비자의 탈을 쓴 ‘범죄’가 쉽게 등장하는 것은 점주들의 이러한 심리 때문이다.
30대 남성 B씨는 합의금을 내놓지 않는다며 상대 점주를 경찰에 고소까지 했다가 덜
미를 잡혔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유리병 음료를 구입한 B씨는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코 속에 상처를 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음료를 마시
는 과정에서 음료 속 이물질(유리 조각)이 자신의 코로 역류해 상처를 입었다며 합의
금으로 7천만 원을 요구했다. 앞서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와 빵집에서 마찬가지의
사기 행각으로 돈을 갈취했던 B씨는 한 방송사에 제보해 선량한 피해자 행세까지 하
며 상대 점주를 압박한 전력도 있었다.
고객의 요구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업자들의 사정과 이를 이용해 일어
나는 사기 행각의 천태만상을 조명해 보았다.
■ 진상 고객의 횡포에 눈물 짓는 사람들
“이런(고객에게 욕설을 듣는) 일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직업에 대한 회의, 좌절,
분노를 삭힐 수밖에 없는데 마음에 상처가 되고 위장병이 심해져서 5개월 동안 상당
히 고생한 적이 있어요.”
- 택배기사 INT
매니큐어 환불을 요구하던 한 여성 고객이 백화점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
다. 내부 규정상 액상류 제품 환불이 불가하다는 직원의 설명 때문이었다. 고객은 급
기야 직원의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가 환불을 요구한 매니큐어의 가격
은 2천 원. 현금 20만 원과 10만 원 어치의 화장품 샘플을 받아들고서야 그는 자리를
떴다.
한 A/S 수리기사는 TV 수리를 위해 고객 집에 방문했다가 모욕성 발언을 들었다고
한다. 수리에 필요한 부속품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설명에 불만을 품던 고객이 서비
스센터로 전화해 ‘어디에서 비리비리한 피라미 새끼 같이 생긴 사람을 보냈냐’ 며 막
말을 퍼부었던 것이다.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일부 악성 소비자들의 ‘진상’을 피부로 느끼는 서비스 종사자
들. 욕설·폭언·폭행 등 문제행동이 이들에게 정신적 피해로 이어져, 2014년 한 설문조
사에 따르면 서비스 종사자의 약 66%가 우울증을 겪었다는 보고도 있다. 악성 소비
자가 서비스 업계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취재했다.
■ 목소리 높이면 모두 악성 소비자?
“소비자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도 그것이 회사에 악영향을 준다거나 보상
을 노린다고 하면 역으로 그 분들을 악성 소비자(블랙컨슈머)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 기업도 발전할 수 있는 건데 이런 신뢰가 무너
진 틈을 악성 소비자가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거든요.”
- 박종태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 INT
악성 소비자는 사업자의 고충만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는 일반
소비자의 목소리조차도 무조건 부당한 것으로 취급받는 상황을 낳고 있다. 이에 대
한 책임을 비단 악성 소비자에게만 전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업자들이 ‘악성 소비자’와 ‘일반 소비자’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
해 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악성 소비자는 궁극적으로 생산성 저하를 가져와 한 업
체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의 문제제기는 한 업체에게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동력이 기업의 발전을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오는 건강한 선순환을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인지 [PD수첩]
이 모색해 보았다.
<2015.8.25 밤 11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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