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메르스에 뚫린 대한민국
국내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지 한 달.
“개미 한 마리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메르스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확진 환자 172명, 사망자 27명(6월 22일 9시 기
준). 2003년 사스 창궐 당시 발 빠른 대응으로 ‘방역 모범국’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
가 왜 유독 메르스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일까. 은 지난 한 달간의 메르
스 사태를 통해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과 취약한 의료시스템의 현 주소를 낱낱이
공개한다.
■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례식
지난 12일, 대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두 환자가 메르스로 사망했다. 다음날인 13
일 오후 3시. 가족과 친지가 함께 슬픔을 나누는 일반 장례와는 달리, 사뭇 삼엄하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시신은 서둘러 ‘화장’ 되었다. 고인이 눈을 감은지 24시
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고인의 마지막 길에 자녀들은 모두 ‘격리상태’로 배웅조
차 하지 못하였다. 어렵사리 제작진과 통화 연결이 된 A씨의 딸은 아버지의 죽음에
분통을 터뜨렸다.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작년부터 호흡이 많이 가쁘셨거든요
병원에 입원해서 호흡기치료 하면 완화가 될까 싶어서 입원 했는데.......
전염병에 걸려서 노인네를 이렇게.......
나라에서 책임져야죠. 어떡할 거예요.
-메르스 사망자 A씨의 딸-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편을 간호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되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는 A씨의 아내.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딸은 “이렇게 부모님 두 분을 잃을까 무섭다”
며 울분을 터뜨렸다. 먼 나라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는 단 며칠 만에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가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화장터에서 만난 또 다른 유족은 메르스로 사망한 B씨의 아들과 사위였다. B씨의
아들은 아버지가“고령자, 기저질환 보유자”였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원통한 부분이
있다며 억울함을 토했다.
우리 아버지 내일 퇴원하는 날이었다니까요.
퇴원하는 날인데 (메르스) 옮았다니까.......
그것(메르스)만 안 옮았어도 우리 아버지 퇴원했다니까요!
-메르스 사망자 B씨의 아들-
■ 비밀과 거짓말이 키운 메르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한 병원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기존 입원환자와
보호자에게 조차 ‘확진 환자 발생’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그리고 병실을 일부 폐쇄조
치 할 때에도 “공사를 한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겼던 것일까?
전염력 높지 않으니까.......메르스라고 발표하면 혼란스러울 테니까.......
(질병관리본부에서 알리지 말라고) “확진환자와 접촉했던 의사 간호사만 자가
격리하고 나머지 그냥 진료해도 된다. 그 대신 메르스의 ‘메’자도 꺼내지 마라.
금방 없어진다”고 그랬어요.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병원 관계자-
결국 병원은 보건당국의 지시로 기존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거짓
말을 했다는 것!
■ 메르스로 드러난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실효성 없는 초기의 ‘메르스 대응 지침’이 메르스의 확산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초기 확진 환자와 ‘2m 이내에 1시간 있던 사람’만을 격리 대상
자로 설정하며 누락된 많은 노출자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본인의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허술한 방역 망이 뚫리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격리 대상자. 문제는 또 있었다. 현 우리나라의 격리병상 수로는 (전국 17곳,
음압병상 수 105개, 일반병상 수 474) 모든 격리 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는 것! 애초 의료체계 자체가 신종전염병 유행에 대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OECD 평균의 공립 병원은 73퍼센트.
우리나라는 병상 수로는 10퍼센트고, 병원 수로는 6퍼센틉니다.
그러다 보니까 평택의 여섯 개 병원 중에 공립 병원이 하나도 없어요.
안성까지 가도 없고. 화성도 없고요. 그러니까 지역의 방역체계라는 것들이
존재 할 수가 없어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우석균-
사실 공공의료기관과 전염병에 대비한 격리병상 확충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와 2014년 에볼라. 보건당국은 신종 전염병이
발생 했을 때마다 예산을 늘리거나 공공의료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
만 메르스 사태를 통해 다시 드러난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의 민낯은 십여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1043회에서는 지난 한 달간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
스 사태를 통해 감염성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심
층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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