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역사저널 그날!! 김육, 대동법을 지키다

 

어렸을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책을 반복해서 수십번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는 별도로 공부를 안해도 성적이

잘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그당시 역사 분야쪽으로 취업의 문이 넓었더라면 대학 진학도

역사분야를 선택했을거란 생각이 가끔씩 든다.

 

요즘도 월 2회 이상은 역사현장을 찾아 관광도 하고 조상의 얼을 느끼고 있다.

특히, 역사다큐인 시사저널은 매주 빼놓지 않고 보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오늘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선시대 정치가 김육의 대동법에 대해서

심층 토론하고 김육이 과연 대동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할려고

하는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대동법 이란 ? 역사책에도 잘나왔듯이 조선시대에 공물(貢物:특산물)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다.

 

대동법(大同法)이 처음 실시된건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일로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것이 시초다.

 

우리가 잘아는 이이(李珥)1569(선조 2) 대공수미법(貸貢收米法)을 건의하였으나

실시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군량 부족에 봉착하였고

 어쩔 수 없이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는 대신에 미곡으로 납세하도록 장려하였다.

 

그러나 전쟁 중에 군량을 조달하려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웠고 징수한 쌀의

 양이 매우 적고 수시로 현물로 징수하는 일도 많아 1년이 되지 않아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농민의 공납 부담이 높아지면서 공납의 폐해는 다시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이 즉위하자 경기도에 한하여 선혜법(宣惠法)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었다.

 

1623년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후 조익(趙翼)의 건의로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에도 대동법을 실시되었으나 강원도를 제외한 충청도 전라도의 대동법은 다음 해 폐지되었다.

 

백성이 원하는데도 대동법이 실시되지 못한 이유는 지방의 부자(부호)들이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처음 실시되고 인조 때 강원도, 효종 때 충청도,

 전라도, 그리고 효종 때 함경도에 도입되어 결국 숙종 34년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정착될 때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다.

 

 그만큼 기득권을 가진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현대 정치도 마찬가지로 왕조시대에서도 개혁을 성공했던 케이스가 극히 드물다.

조선시대에서 진정한 개혁의 성공사례중에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바로 대동법이다.

 

<한 돌 특집> 앙케트 쇼에서 역사 교사들이 부활시키고 싶은 인물’ 8위에 올랐던 김육.

그는 10위권에 있던 다른 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김육이 8위로 지목될 수 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

 

‘200년간 모색해 100년간 개혁한대동법. 백성을 살려 나라의 근간을 보전한

조선 최고의 조세 개혁이다. 영의정의 자리에서도 백성보다 가난했던 양반 김육은

대동법 시행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진정한 정치인이다!!

 

피폐해진 민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대동법이라고 주장했던 김육.”

<연말특집>으로 역사저널 그날에서 대동법과 김육의 삶이 재조명 된다.

 

<연말특집 역사저널 그날>

1227일 토요일 밤 940KBS 1TV

 

 

by 은용네 TV 2014. 12. 27.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