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울 도심을 돌고 도는 버스엔 승객들이 내려놓고 간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 수백 대의 버스가 드나드는 종점이자 출발점인 곳
“이번 정거장은 양천차고지입니다.”
■ 수백 대의 버스가 드나드는 쉼터
운행을 마친 수백 대의 버스가 잠든 곳. 여러 운수업체가 함께 쓰는 종착점인 동시에 출발점인 버스공영차고지다. 서울시 11개의 공영차고지 중 한 곳인 양천 버스공영차고지. 이곳에는 12개 운수업체의 36개 노선을 도는 버스 375대와 기사 750명이 드나든다.
오가는 버스와 사람 수만큼 이곳엔 다양한 사연이 모여든다. 한때 사장님이었지만 IMF에 쓰러져 기사가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이발 가위 대신 운전대를 쥔 이도 있다. 어떨 때는 버스에 실려 승객이나 분실물이 흘러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든 열려있는 종점이자 기점인 곳, 양천 버스공영차고지에서 함께 보낸 3일이다.
■ 전환점에서 ‘오라이’! 인생 누비는 행복버스
버스 차고지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이가 있다. ‘함경도 또순이’라 불리는 유혜선 씨(46)다. 2002년 이북에서 넘어온 그녀는 건설현장 일용직, 식당 종업원, 노점상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지금은 운전대를 잡은 지 10년 차인 베테랑이지만, 이 자리에 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형면허 필기시험에서 낙방한 것만 12번. 운수업체에 들어가기는 더 어려웠다. 경력 없는 그녀를 뽑으려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입 기사 때는 노선을 이탈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승객들이 길을 인도해줘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버스를 운행한 지 10년이 되었더니 모범운전자 자격증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양천차고지에서 만난 동료 기사와 결혼한 것이다. 오늘도 신바람 나게 도로를 누비는 유혜선 씨. 이제는 인생 ‘올라잇’이다.
차고지는 제 삶의 터전이고, 텃밭이에요
처음엔 운전하고 싶어서 구석에 숨어 들여다볼 때가 많았어요
지금도 항상 차 닦으면서 무사히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닦아요
- 유혜선(46세) -
■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하는 새벽 버스
새벽 3시 30분, 모두가 잠든 시각 곽성구 씨(60)의 걸음이 분주하다. 그가 운행할 버스는 8541번 생계형 맞춤버스. 금천구에서 강남구까지 가는 출근버스로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강남으로 청소나 경비를 하러 가는 이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노선이다 보니 곽성구 씨는 어느 역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줄줄 꿴다. 매일 보던 얼굴이 정거장에 안 나오면 걱정하기도 한다. 작은 버스에서 인연이 된 기사와 승객은 어느덧 고단한 출근길의 동지가 됐다.
이번 달 말일이면 정년이라는 곽성구 씨. 앞으로도 계속 8541번을 몰고 싶다는 그의 버스 인생은 여전히 운행 중이다.
매일 보는 분들이니까 가족 같아요
이 분들은 새벽에 나오니까 지치고 피곤하죠
승객들이 타면 안녕한지 인사해요
‘오늘은 좋습니다’라고 하기도 하고요
버스 타는 그 순간만이라고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 곽성구(6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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