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화려한 서울 도심과 가까운 어느 고갯길,
묵묵히 재봉틀을 돌리는 이곳.
단추 한 개, 바느질 한 땀에 인생을 담은 만리동 고개 사람들
재단에서 다림질까지
옷 한 벌이 뚝딱 만들어지는
만리동 고개 봉제 골목에서의 3일이다.
■ 수증기 가득한 40년 역사의 봉제 골목
서울시 마포구, 중구, 용산구의 갈림길에 위치한 만리동 고개. 약 1,500여 개의 봉제공장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봉제 공장. 누군가는 재단을 하고 또 누군가는 재봉틀을 돌리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1970년대, 남대문 시장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형성된 봉제 골목. 간판도, 이름도 없이 다세대 주택에서 쉴 새 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다림질을 하는 이곳, 만리동 고개 사람들의 3일을 담았다.
■ 주문부터 납품까지, 만리동 고개의 하루
만리동 고개의 일과는 예상할 수가 없다. 그 날 아침에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제작 일정이 잡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동대문에서 주문 메시지가 휴대전화로 오느냐 안 오느냐에 따라 만리재가 움직인다. 마침내 시장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봉제 공장에서는 재단을 하고 재봉틀을 돌린다. 그렇게 봉제가 끝난 옷감은 마무리를 담당하는 ‘시아게(마무리)’ 집으로 보내져 단추를 달고 곱게 다림질을 한 후, 탑차를 타고 동대문 시장으로 납품된다. 꼬박 하루를 바쳐 만들어진 옷이 가게에 진열되어 있거나 누군가 직접 입은 모습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차다는 만리동 고개 사람들. 이곳은 그들의 희망과 땀이 서려 있는 삶의 터전이다.
“이 옷을 내가 만들어서 (누군가가) 입는다
그런 게 참 보람 있잖아요 내가 만든 거..
길에서 내가 만든 옷 입은 사람 보면 괜히 기분 좋거든요”
-김동현_(55세) 재단사-
■ 행복을 돌리는 재봉틀
올해 만리동 고개의 여름 휴가는 유난히 길었다. 작년 세월호에 이어 올해 메르스까지, 시장 경제의 침체가 이곳 만리동 고개까지 덮친 것이다. 만리동 고개에서 하청 공장을 운영하는 송지훈, 박현주 부부는 올여름, 강제로 두 달간의 휴가를 얻었다. 직원 한 명 없이 단둘이 만리동 고개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5년, 그 어느 때보다 요즘이 가장 힘들었다는 부부. 처음에는 쉬는 게 좋았지만 하루, 이틀 쉬는 날이 계속 될수록 일하는 패턴에 맞춰져있던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길었던 여름휴가가 지나고 다시 일을 시작 한 지 이틀 째, 박현주 씨는 재봉틀을 돌리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제 집에 가려고 지나가다 보면, 공장마다 재봉틀 소리가 들릴 거 아니에요.
우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저 소리... 아 나도 재봉틀 밟고 싶은데...”
- 박현주_(41세)-
■만리동 고개, 희망의 날개를 펴다
만리동 고개에 즐비한 봉제 공장은 대부분 부부가 운영하는 영세업체이다. 그 중 다세대 주택 1층에 있는 ‘투앤투’ 공장은 만리재의 다른 봉제 공장들보다 규모가 비교적 큰 편. 이곳에는 30여 년 동안 만리동 고개에서 옷을 만들어 온 김도균, 이정현 사장 부부를 비롯해 중국에서 온 김일순 씨, DJ를 꿈꿨던 정은미 씨 등 총 5명이 이곳에서 재단을 하고 재봉틀을 돌린다.
무일푼으로 시작했던 부부의 결혼 생활. 큰 아이를 낳고 4년이 지나서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던 김도균, 이정현 부부는 만리동 고개에서 함께 희망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는 만리동 고개에서 날개를 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전에) 만들어왔던 내 인생의 옷이 몸에 딱 맞게 맞춰 입는 옷이라고 했다면
앞으로 내가 꿈꿔갈 앞날은 화려하고 내가 날개 펴고 날 수 있는...
그런 화려한 옷 만들고 싶어요”
-이정현_(49세)-
<2015.9.6일 밤 10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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