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큐멘터리 3일 대구 중고가전·주방 거리
씽씽 부는 에어컨, 살균 세척 세탁기
쏟아지는 첨단 제품의 홍수 속
낡은 고물이라 불리는 중고 가전제품들
고장 난 냉장고, 유행지난 에어컨이
이 거리에선 뚝딱! 새 제품으로 변신한다
굵은 땀방울을 모아 보물을 만드는 사람들
대구 중고 가전· 주방 거리에서의 3일이다.
■ 땀방울 모아 만든 보물창고
낡은 세탁기, 고물 선풍기가 새로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단장을 하는 곳. 대구 칠성시장에 있는 중고 가전·주방 거리다. 대구 곳곳에서 중고제품을 팔던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거리가 형성된 것은 30여 년 전. 지금은 250여 개의 중고 가전제품 업체들이 큰길과 골목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뜨거운 여름의 필수품인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는 물론 최신 LED 텔레비전부터 40년 된 야외전축까지. 최근에는 폐업한 식당이나 업종 변경으로 쓸모없어져 들어온 대형 주방기구들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많아졌다. 고물처럼 보이던 전자제품들이 상인들의 땀방울로 닦여 누군가에게 필요한 보물이 되는 곳. 뜨거운 태양 아래 상인들이 만들어낸 보물섬, 대구의 중고 가전·주방 거리의 3일이다.
“이런 중고 제품들을 폐기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에 폐기물이 얼마나 쌓이겠습니까. 엄청나죠.
칠성시장만 해도 매일 이걸 재활용 안 하고 폐기한다하면 하루에 한 50~60톤 나갈 거예요. 경제적으로 우리가 큰 일조를 하지 않나싶어요. 애국하는 게 다른 거 있겠습니까? “
-임백호_54세/ 중고 가전·주방 거리 상인-
■ 낡은 냉장고가 새 단장하고 시집가던 날
망가진 중고품들을 고치고 수리하는 남편과 더러운 부분까지 꼼꼼히 살피고 닦아내는 아내. 20년 째 골목에서 가전제품을 팔고 있는 김향옥씨와 박춘우씨는 이 시장의 소문난 잉꼬부부다. 남편인 박춘우씨는 기계를 수리하고 설치하고 아내인 김향옥씨는 닦고 판매하는 일을 거든다. 부부가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있다 보면 싸울 일도 많을 법한데 오히려 사이가 돈독하다. 서로 맡아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전제품을 고치고 수리하기 위한 작업에는 두 사람의 하루가 꼬박 들어간다. 이들에게 중고품들은 곱게 키운 자식 같다. 열심히 수리한 제품이 팔릴 때면 자식을 시집보내는 기분이 든다는 김향옥씨. 부부가 종일 닦고 수리한 냉장고가 들어온 지 두 달 만에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팔렸다. 칠성시장의 잉꼬부부는 오늘 팔린 냉장고가 제 몫을 다 해 내길 바란다.
“들어 온 지 두 달 정도 됐지. 오늘이 시집가는 날이에요.
우리는 제품이 나가면 자식 시집보내는 것 같아요. 가서 잘 되길 바라니까.
자식들도 가서 잘 살길 바라잖아요. 가서 손님 불편하지 않게 잘되길. 그게 최고지.”
- 김향옥/ 중고 가전·주방 거리 상인-
■ 새로운 도전, 때를 벗고 다시 꿈꾸다
주르르 줄을 선 가정용 전자 제품들 사이에는 대형 냉장고와 전기불판 등 식당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들이 보인다. 식당을 운영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다. 필요한 용도의 다양한 제품을 새 제품보다 저렴한 비용에 구매할 수 있기에 소자본으로 돈을 아껴 식당을 열려는 사람들이 단골이다.
다니던 회사의 부도로 거리에서 트럭노점을 운영하던 김홍배씨 부부도 작은 점포에 놓을 가구들과 주방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거리를 찾았다. 20년 만에 얻게 된 작은 점포를 꾸리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배송비도 아까워 직접 트럭을 가져왔다는 부부. 모든 걸 손수 준비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발품을 판만큼 저렴한 비용에 좋은 제품을 구했다. 20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김홍배씨, 묵은 때를 벗은 제품들처럼 빛나는 미래를 꿈꿔본다.
“배송 비 아끼려고 제가 차까지 직접 가져와서 싣고 가려고요.
돈만 많으면 뭐 굳이 이거 살 필요 있어요? 새 거사면 되지요.
저도 전에는 회사를 다녔는데 (다니던 회사가)부도나고, 불나고 이러는 바람에
길거리에 내몰려 분식노점을 하게 됐는데...
열심히 하면 옛날 같이 다시 좋은 기회가 오면 안 좋겠습니까?”
-김홍배_5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