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큐멘터리 3일 경복궁 지킴이 문화재119 경복궁관리소 직원의 하루
왕과 왕비, 궁녀와 중신, 호위군까지
삼천 명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 경복궁
궐 안 빛바랜 문턱에는
그들이 오간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그들이 건네는 수만 가지의 이야기
육백 년의 대화를 담은 3일입니다
■ 서울 도심 속 조선의 숨결
번잡한 도로와 빌딩숲을 지나 광화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대신 기와 담장과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조선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이다. 1395년에 지어진 이곳은 60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동안
몇 차례 수난을 당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뒤 273년간 방치됐고, 고종 대에 이르러 중건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체 건물의 90%가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경복궁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서울의 얼굴, 경복궁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본 사람들의 3일이다.
■ 고궁에 살어리랏다! 경복궁 지킴이들의 하루
고요했던 수라간에 아줌마 부대가 출동했다. 관람객들이 재미삼아 뚫어놓은 창호지를
새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문살에 물을 발라 헌 창호지를 떼는 것부터 한지 재단하기,
풀 먹인 종이 바르기 등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친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그녀들이
출동하면 뚝딱 말끔한 문으로 변신한다.
매일 아침 관람객들이 오기 전, 전각 안에 쌓인 먼지를 쓸고 걸레질 하는 것도 경복궁
관리소 직원인 이들의 몫이다. 432,703m2(약 13만 평)에 달하는 궐내를 동분서주하느라
힘들 법도 하지만, 매일 궁궐에 출근하는 게 즐겁다는 이들. 경복궁 관리소
직원들의 하루를 담았다.
아침에 경복궁에 딱 들어서면 상쾌하고 좋아요.
서울에선 흙 밟을 데가 없잖아요.
여기서는 흙 밟을 수 있으니까 좋고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일하러 왔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니깐 문화재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굉장히 보람을 느낍니다.
- 김유정(67세) / 경복궁 관리소 직원 -
■ 앞으로의 600년을 위하여
오전 8시, 근정전 행각에서 기와를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동료가 행각 지붕에
올라가 헌 기와를 골라내기 시작하자 한편에서는 기와에 바를 홍두깨흙을 빚느라
분주해졌다. 문화재청 산하 직영사업단 소속인 이들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천연 재료와 방법을 그대로 지키며 궐을 복원하고 있다.
목공, 와공, 석공 등 각 분야의 장인들로 구성된 이들에겐 ‘문화재 119’라는 별명이 붙었다. 모진 풍파를 겪어온 경복궁이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지킬 수 있는 건 모두 이들 덕분이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이지만 600년 전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이 궐이 600년 후에도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장인들. 그들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궁궐을 보수할 때, 기와 한 장이나 돌 하나에도
선배 장인들의 손길을 느낍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처럼
그 분들도 한 땀 한 땀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지 않았을까.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양동호(62세) / 문화재청 직영사업단 단장 -
■ 손으로 더듬어 그린 경복궁 지도
주말이면 고궁에 담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 문화 해설가들이
흥례문 앞에 모여든다. 경복궁의 첫 관문을 지나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까지 막힘없이
척척 설명하는 안선옥 씨. 그녀는 시각장애 1급이다. 문화 해설가가 되고 싶어
뛰어들었지만, 궐 안의 복잡하게 얽힌 전각과 문의 위치를 외우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처음엔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지나가는 직원이나 관광객을 붙잡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처럼 시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고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픈 꿈
때문이다. 안선옥 씨가 경복궁과 대화하는 방법은 감각으로 만져보고 느끼는 것이다.
전각을 둘러싼 돌담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뜰도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 안에 쌓인
세월과 이야기를 읽는다. 이제는 같은 어려움과 꿈을 가진 이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는 안선옥 씨. 그녀의 마음속 경복궁 지도는 환하다.
경복궁 지리를 외우기까지 5년 동안 드나들었어요.
여기는 강녕정이구나, 강녕전 앞에는 이런 월대도 있구나.
둘러보면서 만져보고 느끼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궁궐은 죽어있는 곳이 아니라 역사가 면면히 흐르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조상들의 일,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으니까
자꾸 공부하면서 더 뜨거운 마음이 들어요.
- 안선옥(5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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