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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유성룡의 징비록

은용네 TV 2015. 2. 22. 20:04

 

조선시대 베스트셀러 "징비록"은 구국의 영웅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과 전황 등을 세세하게 그려낸 역사 기록서이다.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에 유출되며 조선 징비록 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고 일본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18세기에는 청나라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널리 퍼졌다.

 

조선의 국정을 담은 책으로 비밀문서와도 같이 엄격히 관리되어 왔던 징비록이 일본에 유출되어 그들의 역사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기전 조선 조정은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때로 정여립의 난 등 시대적 상황이 극한까지 다다른 위태로운 시대였다.

 

우리나라 18대 명현중의 한분으로 유학자며 정치가로 이름높은 율곡 이이는 병조판서로 재직시 일본을 경계하여 10만 대군 양병설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10년전이다.

 

 

그 당시 사회상황이 어려웠던 관계로 10만 양병설은 무리였고, 특히 동인이었던 서애 류성룡이 반대하고 나섰다.

 

만약 율곡 이이의 말대로 10만 대군을 양성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대상황이 어려웠더라도 장기적으로 매년 1만명씩만 양성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전 국토가 피폐화 되었고, 문화재 수탈 및 파괴, 인명 살상 등 전란으로 인한 피해는 10만 양병을 키우는 것보다는 10배, 아니 100배 더 피해가 심했을 것이다.

 

 

그 당시 영의정이자 전쟁 총지휘관으로 국정을 지휘했던 류성룡!!

 

전쟁을 이기는 방법은 바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그의 지론은 전쟁중에도  먹어야하고, 잘 먹어야 민생도 안정되고 나라를 지킬수 있다는 생각으로 솔잎가루를 이용한 구휼방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국방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조선 최초로 월급을 주고 군사를 키우는 일종의 직업군인 제도라 할 수 있는 훈련도감 창설을 제안 했다.

 

비판과 냉소를 무릅쓰고 전란극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와 교훈을 후손에게 남긴 그의 위대한 유산"징비록"

 

 

tv 대하드라마로 제작되어 현재 방영되고도 있는 징비록은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르켜 준다.